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25 화
우주목이 뿌리내린 자리, 그리고 세상이라는 거대한 사냥터 (시즌 1 完)
프로젝트 NOD의 런칭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의 디바이스는 전 세계 IT 생태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사용자들은 ‘사유(思惟)‘를 거세당하는 대신 기기와 함께 철학적으로 교감하며 일상을 예술로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서도진 상무. 아니, 이제 서 본부장이라고 불러야겠군.”
32층 사장실. 이 사장(옥춘대감)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새로운 사령장을 내려놓았다. 황금빛 인장과 너른 서안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 웅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부로 미래기획팀은 ‘글로벌 NOD 본부’로 승격한다. 자네에게 본부장직과 함께 회사 전체의 R&D 인사권 및 예산 전권을 위임하겠네. 황 전무가 남긴 썩은 잔재들은 자네가 전부 도려내.”
사내 정치의 정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일개 팀장이, 기어코 회사의 심장부를 장악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부와 명예는 고이지 않고 흐를 때 비로소 거대한 강이 됩니다. 사장님께서 건네주신 이 권한, 세상을 가장 완벽하게 튜닝하는 데 쓰겠습니다.”
사장실을 나서는 내 등 뒤로 든든한 황금빛 장막이 넓게 펼쳐졌다.
새롭게 배정된 30층 전체의 NOD 본부 사무실. 그곳은 더 이상 쫓겨난 자들의 유배지가 아니었다. 15개의 찬란한 별들이 각자의 궤도를 돌며 완벽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생태계였다.
오 과장(옥춘거목)은 이제 수백 명의 개발자를 거느린 보안 총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구석 자리에서 태산처럼 서버를 지키고 있었고, 백 차장(옥춘풍운)과 윤 과장(옥춘객주)은 글로벌 공급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막대한 부와 자재를 쓸어 담고 있었다.
강한결 변호사(옥춘무사)는 아예 우리 본부 전속 법무팀장으로 자리 잡았고, 유아진 대리(옥춘예인)의 터치 한 번에 전 세계 디자인 트렌드가 요동쳤다. 그리고 이 모든 맹렬한 혁신(상관)의 중심에는, 서늘한 붓끝으로 윤리의 경계를 긋고 시스템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무영(옥춘시객)의 철학(정인)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통유리창 너머로 눈부시게 빛나는 내 팀원들, 아니 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내 가슴 속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이 평온하게 갈무리되었다. 벼랑 끝에 버려진 재와 절망들을 흙에 묻고 맹렬히 빚어내어, 기어코 가장 화려한 시작으로 피워낸 가색지성(稼穡之性)의 사명. 사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튜토리얼’은 이렇게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그날 밤. 본부 승격 축하 회식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텅 빈 사무실. 나는 홀로 불 꺼진 창가에 서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를 채운 수많은 불빛 속에는, 우리가 만든 기기를 통해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데이터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축배를 들기엔 표정이 너무 무거운 것 아닙니까.”
어둠 속에서 정갈한 발소리와 함께 무영이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 역시 창밖의 거대한 도시를 향해 있었다.
“튜토리얼이 끝났을 뿐이니까요.”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내 시야가 다시 한번 거대하게 일렁이며, 신화의 장막이 걷힌 현실 너머의 진짜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 전무를 집어삼켰던 사내의 무명(無名)은 그저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강남의 거대한 금융가, 그리고 저 멀리 바다 너머의 글로벌 빅테크 심장부들.
빛의 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타인의 삶을 갉아먹는 탐욕의 찌꺼기들,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진짜 무명(無名)의 본체들이 정치, 자본, 언론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온 세상을 시커멓게 덮고 숨 쉬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우리가 만든 이 작은 15별의 생태계로, 저 거대한 세상의 어둠을 전부 정화할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무영이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예리한 붓과 거친 야수성이 동시에 번뜩였다.
“별자리가 완성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밤하늘이 무한하듯, 시인(詩人)이 써 내려가야 할 서사도 무한하죠. 저 끔찍한 괴물들이 세상의 사유를 갉아먹으려 든다면…”
무영이 내 곁에 서서 창밖의 거대한 어둠을 향해 서늘한 안광을 빛냈다.
“우리의 기기로 전 세계의 룰을 다시 쓰면 됩니다. 당신이 흙을 다지고, 우리가 그 위에서 싸울 테니까요.”
그녀의 말이 맞다. 우리는 폐급 부서의 루저들이 아니라, 세상을 튜닝하기 위해 강림한 15개의 별이다. 사내 정치는 그저 몸을 풀기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프로젝트 NOD 시즌 2 - 글로벌 확장 로드맵’ 파일을 전송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부터, 다시 무기를 뽑아 들죠.”
창밖으로 어스름한 새벽빛이 밝아오며, 거대한 도시를 덮고 있던 짙은 어둠의 장막과 찬란한 15별의 기운이 맹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피할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기업이라는 좁은 우물을 벗어나 세상이라는 거대한 사냥터로 나아가는 변환자(變換者)의 발걸음.
세상의 본질을 건 진짜 전쟁, 그 압도적인 시즌 2의 막이 방금 막 오르고 있었다.
(시즌 1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