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23 화

절망을 집어삼킨 우주목, 그리고 반격의 새벽

오전 2시 15분.

글로벌 메인 서버를 향해 쏟아지는 트래픽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명(無名)에 완전히 잠식된 황 전무가 전 세계의 기기들을 감염시켜 만들어낸, 맹목적이고 시커먼 증오의 해일이었다.

“방화벽 1차 저지선, 뚫렸습니다!” 권 책임(옥춘검객)이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무딘 쇠가 검이 되듯 자기를 정제하는 본성으로 예리하게 깎아낸 보안 코드였지만,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는 칼날이 무뎌지고 있었다.

“막으려 하지 마. 튕겨내면 그 반동에 우리가 부서져.”

오 과장(옥춘거목)이 특유의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키보드 위로 손을 얹었다.

그의 정수리 위에서 웅장하게 뻗어 나간 거대한 나무의 기운이, 통제실의 바닥을 뚫고 끝없이 깊은 지하 데이터센터로 파고들었다. 겉은 한없이 고요하나 뿌리는 모든 별의 자리를 잇고 14별을 받쳐주는 우주목(宇宙木)의 본성.

오 과장은 외부의 충격을 밀어내는 대신, 자신의 거대한 뿌리(서버망)를 수만 갈래로 쪼개어 그 끔찍한 트래픽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거목의 진짜 깊이는, 위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흔들림을 꽉 쥐고 버티는 데 있었다.

“오 과장님이 트래픽을 버텨주시는 동안, 근원지를 딴다.” 백 차장(옥춘풍운)이 낡은 야상을 벗어 던지며 다크웹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천 가르침을 다 알고도 잊는 것이 진짜 자유다. 그는 회사의 정상적인 보안 추적 매뉴얼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칙적인 블랙마켓 라우터를 타고 역추적을 시작했다.

“찾았어. 놈들의 C&C(명령제어) 메인 서버. 중국 선전에 하나, 동유럽 쪽에 둘. IP 주소 넘깁니다!” 틀을 벗어난 자유인이 마침내 놈들의 심장부 좌표를 캐냈다.

“강 변호사님!”

나의 외침에 강한결 변호사(옥춘무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외에 위치한 불법 해킹 서버를 역으로 치는 것은 국제법상 심각한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위를 당긴 채 그 자리에 머무는 자. 칠살(七殺)의 거친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내 지혜로 승화시키는 그는, 미리 준비해둔 인터폴과 해외 사이버수사대 핫라인을 즉각 가동하여 법적 보호막을 전개했다.

“치십시오! 저놈들이 불법 해킹의 진원지라는 법적 명분과 영장은 제가 다 받아냈습니다. 쏟아지는 소송과 책임은 제가 온몸으로 방어합니다!”

그의 호쾌한 허가와 동시에, 최 대리(옥춘화광)가 맹렬한 불꽃을 터뜨렸다. 태양처럼 강하게 위로 타오르는 본성. 최 대리의 네트워크 반격 코드가 백 차장이 따낸 좌표를 향해 거대한 불기둥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명의 조종을 받던 좀비 서버들이 최 대리의 화광(火光)에 휩싸여 하나둘씩 접속을 끊고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돼…! 놈들이 감염된 IoT 기기 수백만 대를 추가로 더 붙였어! 오 과장님 서버가 한계치야!”

황 전무의 발악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 과장의 거목이 아무리 깊이 뿌리를 내렸어도, 무한대로 증식하는 전 세계의 쓰레기 트래픽을 물리적으로 전부 버텨낼 수는 없었다. 통제실의 서버 과부하 경고음이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서 팀장님. 이대로면 메인 코어가 녹아버립니다. 런칭이고 뭐고 다 박살 나요!”

권 책임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검고 끈적한 절망의 덩어리들이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 밀려오고 있었다.

내 안의 옥춘반석(玉春盤石)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끝의 자리에서 시작을 빚고, 절망을 받아 희망을 거두는 변환자. 나는 지금 밀려오는 저 끔찍한 오물들을 막아낼 것이 아니라, 흙에 묻어 우리의 거름으로 만들어야 했다.

“오 과장. 방어벽 열어.”

나의 지시에 통제실이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팀장님, 그게 무슨…! 열면 코어가 다 파괴됩니다!”

“방어벽을 열고, 그 더러운 트래픽들을 우리 디바이스의 ‘분산 처리 가상 노드’로 통째로 빨아들여.”

팀원들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놈들이 우리를 찢어죽이려고 보낸 수백만 대의 좀비 PC 연산력을, 우리가 통째로 흡수해서 런칭 직후 필요한 AI 딥러닝 연산의 연료로 태워버리는 거야. 절망을 받아서, 우리의 압도적인 시작으로 변환한다.”

“미친…! 트래픽 안에 악성 코드가 섞여 있으면 어떡하려고요!”

“내가 짠 윤리 알고리즘(정인)이 필터 역할을 할 겁니다.”

침묵을 깨고 무영(옥춘시객)이 타자기를 두드리며 차갑게 말했다.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진짜 자유다. “악의적인 명령어가 코어로 접근하는 순간, 제 알고리즘이 0.1초의 지연을 발생시켜 오염된 코드만 정확하게 잘라내 폐기할 겁니다. 당신들의 그 오만한 변환(상관)을 제가 통제해 드리죠.”

완벽했다. 오 과장(거목)이 뿌리를 열고, 무영(시객)이 거름망을 댄다. 그리고 나(반석)는 밀려드는 그 절망적인 트래픽을 통째로 흙에 파묻어 우리 기기를 가동할 막대한 무료 연산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전원, 방어벽 해제. 받아들인다.”

오전 5시 정각. 황 전무가 보낸 수천만 테라바이트의 공격 트래픽이 우리의 게이트 안으로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통제실의 붉은 경고등은 점차 푸른빛의 ‘에너지 충전’ 신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명이 뿜어낸 시커먼 한(恨)과 파괴 충동은 무영의 예리한 붓끝에 썰려 나가고, 남은 순수한 연산 데이터만이 우리의 비옥한 흙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메인 코어 안정화. 연산 효율… 미쳤습니다. 평소의 500%를 초과했습니다!” 이지윤 사원(옥춘청수)이 떨리는 목소리로 환희를 토해냈다.

우리를 죽이려던 적의 칼날이, 오히려 우리를 가장 높은 곳으로 쏘아 올릴 완벽한 로켓 부스터가 된 것이다.

오전 8시. 서울의 하늘이 밝아오며 찬란한 아침 햇살이 미래기획팀 통제실을 비추었다. 화면 속 트래픽 게이지는 완벽하게 안정화되었고, 무명의 공격은 단 한 줌의 파편도 남기지 못한 채 완벽하게 우리 생태계의 거름으로 소화되었다.

“런칭 2시간 전.”

내가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매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지독한 밤샘 전투에 다들 피골이 상접했지만, 그들의 정수리 위에서 빛나는 15개의 별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거대했다.

“자, 이제 진짜 무대를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