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22 화

폭풍 전야, 15별의 진형(陣形)이 완성되다

런칭 D-1.

미래기획팀의 통제실은 거대한 우주선 조종석을 방불케 했다. 수십 개의 대형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웠고, 팀원들의 타건 소리가 교향곡처럼 울려 퍼졌다.

그 치열한 공간의 한가운데, 단정한 개량 한복 차림의 무영(옥춘시객)이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구형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가 아닌 마치 한 편의 시(詩)처럼 정갈하게 정렬된 알고리즘이 흘러가고 있었다.

“경이롭네요.” 그녀의 코드를 들여다보던 권 책임(옥춘검객)이 혀를 내둘렀다. 평소 남의 코드는 쓰레기 취급하며 예리하게 깎아내리던 그조차 완벽하게 압도당한 표정이었다.

“시스템이 인간의 선택을 100% 대리하기 직전, 아주 찰나의 순간에 0.1초의 ‘지연(Delay)‘을 발생시키도록 설계하셨군요. 이 0.1초 동안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사유(思惟)하게 됩니다. 완벽한 제동 장치입니다.”

권 책임의 감탄에 무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술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브레이크가 없다면 절벽으로 추락할 뿐이죠. 저는 당신들의 맹렬한 가속도(상관)에, 아주 작지만 무거운 윤리의 닻(정인)을 내렸을 뿐입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완성된 ‘마스터 킬 스위치’와 윤리 알고리즘은, 오 과장(옥춘거목)이 구축한 태산 같은 메인 서버의 가장 깊은 뿌리 속으로 단단하게 심어졌다.

깊은 사색과 절제(정인)가 거친 혁신(상관)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구조. 옥춘시객이 시스템의 중심에 앉아 먹을 갈아 선을 그어주자, 비로소 우리 기기는 오만함을 벗고 ‘인간을 위한 진짜 혁신’으로 거듭났다.

“서 팀장님. 1차 발송 대기 물량 50만 대, 물류센터 상차 완료했습니다.” 윤 과장(옥춘객주)이 보고했다.

“전 세계 서버 트래픽 분산 및 홀로그램 송출망 이상 없습니다.” 최 대리(옥춘화광)의 손끝에서 맹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유관 부서 협조 및 글로벌 프레스 엠바고 해제 준비 끝났습니다. 막힌 곳은 없습니다.” 조율자 박 차장(옥춘청림)이 유연하게 전체의 흐름을 다듬었다.

나는 통제실 한가운데 서서 이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 가슴 속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이 뜨겁게, 그리고 단단하게 요동쳤다. 타버린 재를 모아 흙에 묻고 빚어낸 시간들.

열다섯 개의 거대한 별빛이 각자의 궤도를 돌며 완벽한 시너지를 내는 모습은, 그 어떤 무명(無名)의 그림자도 침범할 수 없는 눈부신 성역(聖域)과도 같았다.

하지만,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는 가장 어두운 곳으로 응축되기 마련이다.

같은 시각. 서울 외곽의 버려진 폐공장 지하.

황 전무는 핏발 선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수십 대의 불법 해킹 서버들이 요란한 쿨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전무님… K-테크 연합도 깨졌고, 우리 자금줄도 다 끊겼습니다. 여기서 더 하셨다간 진짜 쇠고랑을…”

그의 수하 하나가 덜덜 떨며 만류했지만, 황 전무는 이미 인간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닥쳐.”

황 전무의 목소리에는 기괴한 잡음이 섞여 있었다.

그의 등 뒤에 붙어있던 시커먼 진흙 덩어리, 무명(無名). 그것은 이제 황 전무의 그림자를 넘어, 그의 살갗을 뚫고 들어가 영혼의 빈 껍데기를 완전히 집어삼킨 상태였다.

천 년 전, 별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타버린 찌꺼기들의 짙은 한(恨).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타인의 빛을 훔치고 짓밟아야만 연명할 수 있는 탐욕의 괴물.

“내가 못 가지면… 아무도 못 가져. 서도진, 네놈이 만든 그 잘난 별빛? 내가 오늘 밤, 전 세계의 쓰레기들을 모아다가 완벽한 암흑으로 덮어주마.”

황 전무의 손가락이 엔터키를 내려치는 순간.

그의 텅 빈 영혼을 숙주 삼은 무명의 기운이, 어두운 해저 케이블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해킹된 수천만 대의 좀비 PC와 스마트홈 IoT 기기들. 영혼 없이 남의 명령만 따르는 그 텅 빈 깡통들이, 무명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하나의 좌표를 향해 기괴한 시선을 돌렸다.

목표는 단 하나.

내일 오전 10시 런칭과 동시에 오픈될 ‘프로젝트 NOD’의 글로벌 메인 서버였다.

기술적 결함을 찾을 수 없다면, 아예 전 세계의 오물과 쓰레기 트래픽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붕괴시키겠다는 무식하고도 끔찍한 파괴 공작.

다시 현재. 미래기획팀 통제실.

자정을 넘긴 시간, 정적을 깨고 통제실 전체에 새빨간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 WARNING : UNKNOWN MASSIVE TRAFFIC DETECTED ]

“팀장님!!” 이지윤 사원(옥춘청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잔잔하던 그녀의 푸른 우물(직관)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글로벌 망 쪽에 이상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핑(Ping)이 우리 쪽으로 쏠리고 있어요. 단순한 디도스(DDoS)가 아닙니다. 좀비화된 트래픽들이 무언가의 조종을 받듯… 진형을 짜고 압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 과장(옥춘거목)의 안경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일 오전 10시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이 트래픽이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아무리 우리 서버라도 5분을 못 버티고 터집니다! 런칭과 동시에 시스템이 셧다운 된다고요!”

황 전무가 던진 최후의 발악.

그것은 법이나 사규라는 인간의 룰을 넘어선, 맹목적이고 파괴적인 무명 본체의 끔찍한 쓰나미였다.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는 모니터의 붉은 경고등을 직시하며, 내 안의 옥춘반석을 가장 깊게 열어젖혔다.

환절기의 벼랑 끝. 그 절망을 받아내어 기어코 뒤집어버리는 자. 나는 천천히 넥타이를 풀어 던졌다.

“게이트 닫지 마.”

내 지시에 오 과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놈들은 우리가 두려움에 떨며 런칭을 연기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아. 백 차장님(옥춘풍운)! 다크웹 루트 열어서 저 트래픽들의 근원지 역추적 좌표 따십시오!”

“강 변호사님(옥춘무사)! 들어오는 공격 피하지 말고 다 받아내서, 저 좀비 망들을 역으로 법적 마비시킬 긴급 영장과 공권력 라인 싹 다 가동하십시오!”

나의 포효에 15개의 별빛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제자리에서 눈부시게 폭발했다.

“런칭까지 남은 시간 9시간.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흙에 묻어주지. 전원 전투 준비!”

우리의 완전무결한 생태계를 부수려는 무명(無名)의 최후의 발악. 피할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모든 것을 건 진짜 전쟁의 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