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20 화
닫힌 문을 부수는 가장 완벽한 방법, 나눔의 인덕(仁德)
“대관장 전면 봉쇄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전화기 너머 이 사장(옥춘대감)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황 전무, 그 미친놈이 구청 건축과를 매수해서 대관장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 및 붕괴 위험’이라는 허위 신고를 넣었어. 구청에서 당장 내일 아침까지 안전 진단을 명목으로 건물 전체에 폐쇄 명령을 때렸네. 당장 내일 오전 10시가 전 세계 생중계인데, 프레스(언론)와 VIP들이 들어갈 공간 자체가 사라진 거야.]
이 사장의 황금빛 장막이 분노로 일렁이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상황을 전하자, 팀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법적으로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을 낼 수는 있습니다.” 강한결 변호사(옥춘무사)가 차갑게 상황을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48시간이 걸립니다. 내일 오전 10시 행사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망했네… 유아진 대리(옥춘예인)가 기가 막히게 뽑아놓은 홀로그램 무대 장치들, 전부 저 안에 갇혀버렸잖아요!” 최 대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황 전무의 등 뒤에 붙어있던 시커먼 무명(無名). 놈은 우리가 만들어낸 완벽한 결실을 부수기 위해, 아예 그 결실을 담아낼 ‘그릇(공간)’ 자체를 박살 내는 가장 치졸하고 확실한 칠살(七殺)을 던진 것이다.
‘하나뿐인 한정된 공간(재성)을 두고 적들과 목숨 걸고 다툰다.’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명리학의 이치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비겁(경쟁자)이 무리 지어 적은 재성을 다투는 형국. 명리학에서는 이를 ‘군겁쟁재(群劫爭財)‘라 부른다. 이런 판에서 한정된 재물을 혼자 차지하려 발버둥 치면, 결국 경쟁자들과 물어뜯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최악의 파국을 맞이한다.
이 저주받은 판을 뒤집는 유일한 해법은 단 하나.
‘움켜쥐지 말고, 쪼개어 세상에 던져버리는 것.’
내 가슴 속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이 거칠게 박동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객지원(CS) 본부로 달렸다.
고객지원 본부장, 공지훈.
그는 회사 내에서 ‘퍼주기 멍청이’로 통했다.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과도한 보상과 무상 수리를 퍼주어, 임원들에게 ‘회사 곳간 거덜 내는 무능한 놈’이라며 늘 욕을 먹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내였다.
하지만 내가 본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내 시야가 일그러지며, 서류 더미에 파묻혀 야근 중이던 공 본부장의 머리 위로 눈부신 환영이 피어올랐다.
마을 어귀 잔치판에서,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곳간 열쇠를 열고 두 손으로 됫박 가득 곡식을 퍼서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의 형상.
‘군겁쟁재(群劫爭財) - 옥춘인덕(玉春仁德)’.
혼자 차지하려 하면 잃지만, 자기 것을 끊임없이 나눔으로써 결국 더 큰 복이 돌아오는 구조. 한국 전통에서 베풀수록 복이 쌓이는 사람을 일컫는 ‘인덕가(仁德家)‘의 본성 그 자체였다.
“공 본부장님.”
나의 부름에 그가 피곤한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서 팀장? 내일 런칭 쇼케이스 때문에 바쁠 텐데 여기엔 어쩐 일인가?”
“본부장님이 지난 5년간 임원들한테 욕을 처먹어가며 챙겨준 이 회사의 하드코어 충성 고객(팬덤).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뭐? 음… 베타 테스터 풀(Pool)과 우리 커뮤니티 정예 멤버만 추려도 대략 10만 명은 넘지. 그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진짜 자산이야.”
공 본부장의 눈빛이 자부심으로 반짝였다.
“본부장님. 내일 대관장이 봉쇄됐습니다. VIP와 기자들을 모실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뭐라고?! 그럼 런칭은…”
나는 상체를 숙여 공 본부장의 책상을 양손으로 짚었다. “그래서, 내일 쇼케이스는 VIP들에게 보여주는 폐쇄적인 행사가 아닙니다. 본부장님이 쥐고 계신 그 ‘곳간 열쇠’를 열어, 10만 명의 고객들에게 이 혁신을 무료로 가장 먼저 나누어 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제품은 아직 양산도 안 됐는데 어떻게 10만 명에게…”
“유아진 대리(옥춘예인)가 만든 ‘홀로그램 AR 앱’이 있습니다. 우리 기기가 없어도, 고객들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우리 기기의 UX를 공간에 띄워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는 앱입니다. 본부장님의 권한으로, 내일 오전 10시 정각에 10만 명의 고객에게 이 앱의 마스터 권한을 뿌려버리십시오.”
나의 말에 공 본부장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미공개 마스터 앱을 대중에게 풀어? 보안팀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나누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아옵니다. 닫힌 문 앞에서 다투지 말고, 세상이라는 가장 거대한 광장으로 우리의 무대를 옮기는 겁니다. 본부장님이 뿌린 그 나눔이, 내일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을 거대한 불길이 될 테니까요.”
나의 확신에 찬 눈빛을 마주한 순간.
공 본부장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실적 압박’과 ‘회사 규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산산조각 났다.
숨겨져 있던 옥춘인덕의 됫박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쏟아졌다. 자기 몫을 양보하고 베풀수록 사람을 모으는 어진 덕(仁德)이 마침내 완벽하게 각성한 것이다.
“하하…! 미친 짓이군. 내가 맨날 고객들한테 퍼준다고 욕을 먹었는데, 이번엔 아예 회사의 심장부를 퍼다 주라니.”
공 본부장이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좋아. 까짓거 내가 잘리고 말지. 우리 고객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끝내주는 아침을 선물해 주자고.”
13번째 별, 세상에 풍요를 나누는 옥춘인덕이 마침내 우리의 대열에 합류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50분.
폴리스 라인이 쳐진 텅 빈 D-Convention Center 앞. 황 전무는 차 안에서 봉쇄된 건물을 바라보며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서도진.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공간이 없으면 끝이다. 언론들이 ‘사기극’이라며 기사를 쏟아낼 테니까.”
하지만 오전 10시 정각.
황 전무의 스마트폰에 수백 개의 알림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란 그가 유튜브와 SNS를 켠 순간,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뉴욕의 타임스퀘어, 도쿄의 시부야, 그리고 수만 개의 카페와 방구석.
공 본부장이 밤새 뿌린 AR 앱을 다운받은 10만 명의 고객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허공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유아진 대리가 창조한 생동감 넘치는 3D 모션 그래픽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고객들은 닫힌 무대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일상 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프로젝트 NOD’의 홀로그램 쇼케이스를 직접 참여하고 조작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언론은 텅 빈 대관장 대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사용자들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 “스펙을 나열하는 지루한 무대는 죽었다! 일상 자체가 무대가 되는 전무후무한 참여형 런칭쇼!” ]
기사를 확인한 황 전무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등 뒤에서 기괴하게 몸집을 불리던 무명(無名)의 그림자가, 전 세계 1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압도적인 환희와 빛의 물결(인덕의 힘)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형체도 없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닫힌 문을 뚫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세상의 모든 벽을 허물어, 그 공간 전체를 우리의 무대로 변환시켜 버렸다.
이것이 하늘이 내린 15별, 어벤져스의 시너지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