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18 화

썩은 룰을 깨부수는 자유인, 옥춘풍운(玉春風雲)

법정에서의 완벽한 승리. 미래기획팀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내 발등 위로 스며들었던 시커먼 진흙(무명)의 감촉은 밤새도록 내 신경을 긁어댔다.

놈은 분명 가장 치명적인 내부의 약점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다.

다음 날 오전 9시.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공장 라인이 멈췄어요!” 시제품 양산을 전담하던 윤 과장(옥춘객주)이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소립니까? 어제 분명 1차 양산 부품 발주가 들어갔잖습니까.”

“구매 본부 쪽에서 일방적으로 PO(구매 주문서)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우리 디바이스의 심장인 ‘초소형 NPU 칩셋’ 공급 계약을 전면 홀딩시켰다고요!”

나는 즉각 구매 본부로 향했다. 그곳의 책임자인 최 본부장은, 한때 황 전무와 호형호제하며 사내 카르텔을 구축했던 인간이었다. 그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 본부장의 등 뒤로 거대하고 끈적한 그림자가 천장을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내 발등에 떨어졌던 무명의 파편이 이 인간을 새로운 숙주로 삼아 몸집을 불린 것이다.

“최 본부장님. 사장님 직속 프로젝트의 핵심 부품 발주를 마음대로 취소하시다니요.”

최 본부장이 여유롭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서 팀장. 오해하지 마. 나는 그저 회사의 ‘규정(Rule)‘을 따를 뿐이야. 자네 팀, 어제 특허 소송에 휘말렸다지? 사규 제8장 구매 리스크 관리 조항에 따르면,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는 프로젝트는 리스크 해소 전까지 모든 자재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

어제 우리가 박살 낸 소송이, 오히려 부품 수급을 끊는 ‘합법적 명분’으로 변질되어 돌아온 것이다.

정 대리(옥춘선비)가 와서 규정의 허점을 찌른다 해도 소용없을 터였다. 저쪽은 아예 사규라는 거대한 성벽 뒤에 숨어, 우리가 말라 죽기만을 기다리며 문을 굳게 닫아버렸으니까.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합법을 가장한 억지 규정. 이 꽉 막힌 성벽(관성)을 정공법으로 뚫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 썩어빠진 성벽 자체를 폭파시켜 버릴 미친놈이 필요해.’

나는 인사팀 서버를 뒤져 구매 본부의 인원 명부를 살폈다.

그리고 한 명의 이름에 시선이 멈췄다. 구매팀 소속이지만, 툭하면 지시 불이행과 무단결근으로 징계위원회에 단골로 오르내리다 결국 지하 비품 창고 관리직으로 좌천된 인간. 백 차장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하 3층 비품 창고로 내려갔다.

컴컴하고 먼지 쌓인 창고 구석. 간이침대에 누워 태평하게 이어폰을 꽂고 무협지를 읽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백 차장님.”

그가 귀찮은 듯 한쪽 이어폰을 뺐다.

“누구쇼? A4 용지 떨어졌으면 저기 랙에서 알아서 가져가요.”

그가 몸을 뒤척이는 순간, 찌릿- 하는 직감과 함께 그의 정수리 위로 경이로운 환영이 피어올랐다. 깊은 산속과 구름, 그리고 그 골짜기 사이를 얽매임 없이 거니는 한 남자의 형상. 그의 손에는 세속의 짐 대신 가벼운 표주박과 지팡이만이 들려 있었다.

‘식상파관(食傷破官).’

자기 표현과 창조의 별인 식상(食傷)이, 규율과 통제의 별인 관성(官星)을 무참히 깨뜨려버리는 구조. 일반적인 조직 생활이나 통제된 환경에서는 답답함을 느끼고 튕겨 나가지만, 자유롭게 자기 길을 갈 때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옥춘풍운(玉春風雲)‘이었다.

“천 권의 책을 다 읽고도 기꺼이 그 틀을 깨부수고 자기 길을 가는 분이, 왜 이런 어두운 창고에 처박혀 계십니까.”

내 뜬금없는 말에 백 차장이 무협지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기묘하게 번뜩였다.

“그쪽이 그 유명한 서도진 팀장이군. 틀을 깨부숴? 웃기는 소리. 내가 왜 창고에 박혔는지 알아? 윗선 놈들이 정해놓은 그 놈의 ‘표준 구매 절차’니 ‘우수 협력사 리스트’니 하는 것들이, 사실은 임원들 리베이트 챙겨주려고 만든 썩은 룰이거든. 그거 무시하고 진짜 실력 있는 대만 뒷골목 공장에서 반값에 부품 떼왔다가 징계 먹은 게 나야.”

그의 머리 위에서 답답한 사규와 권위주의(관성)가 그를 짓누르려 했지만, 백 차장의 본질은 도인처럼 세속의 틀을 비웃으며 끊임없이 관성과의 충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천 가르침을 다 알고도 잊는 것이 진짜 자유다.

나는 내 가슴 속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을 열었다. 회사의 통제 속에서 억눌리고 버림받았던 그의 재능을 내가 흙에 묻어, 완전한 해방의 무대로 변환시켜줄 차례였다.

“백 차장님. 최 본부장이 정상적인 발주를 막았습니다. 우리에게는 3일 안에 그놈의 ‘절차’와 ‘사규’를 전부 무시하고, 전 세계 어디서든 은밀하게 NPU 칩 10만 개를 쓸어 올 미친 브로커가 필요합니다.”

백 차장의 입가에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이 번졌다.

“구매 본부 패싱하고 비선으로 부품을 들여오라고? 그거 걸리면 내 모가지는 물론이고, 팀장님도 한 방에 배임으로 철창행이야.”

“뒷감당은 사장님 직통 라인을 가진 제가 합니다. 차장님은 그냥, 차장님의 그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길을 가주시면 됩니다.”

나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본 순간.

백 차장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답답한 창고의 그림자들이 펑! 하고 터져나갔다.

자유로이 걷는 걸음과 바람 부는 옷자락. 세속을 멀리 보는 눈을 가진 옥춘풍운(玉春風雲)이 마침내 무거운 족쇄를 끊어버리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는 틀을 벗어난 자유인이었다. 관성을 깨뜨림(食傷破官)은 단순히 규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길을 알고도 자기 길을 새로 여는 압도적인 창조성이었다.

“하하하! 좋아. 징그럽게 꽉 막힌 이 회사에서, 당신 같은 미친놈을 만날 줄은 몰랐네.”

백 차장이 간이침대 밑에서 먼지 쌓인 구형 암호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심천의 뒷골목 팹(Fab)부터, 대만의 비공식 라인까지. 내가 뚫어놓은 자유 무역항의 블랙마켓 루트를 싹 다 열어주지. 3일? 이틀이면 칩셋 박스들이 우리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떨어지게 해 줄게.”

15별 중 가장 이단적이고 자유로운 영혼, 11번째 조각인 옥춘풍운이 우리 대열에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최 본부장. 네가 사규라는 썩은 룰로 문을 걸어 잠갔다면, 우리는 아예 담벼락을 부수고 하늘을 날아서 벽을 넘어버릴 것이다. 무명은 결코, 이 압도적인 자유의 빛을 가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