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17 화

칠살(七殺)의 화살을 쪼개어 적의 심장에 꽂다

자정이 넘은 시각.

미래기획팀 사무실은 수천 장의 소장과 증거 자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황 전무가 주도하는 ‘K-테크 혁신 연합’이 법원에 제출한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서였다.

“미치겠네. 이것들이 우리가 쓰지도 않은 오픈 소스 코드까지 다 들고 와서 특허 침해라고 우기고 있어요.”

최 대리(옥춘화광)가 모니터 3개를 동시에 띄워놓고 거칠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방어 논리를 짜려 하지 마십시오.” 법무팀 파견 변호사, 강한결(옥춘무사)이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어느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사냥감이 스스로 약점을 드러낼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숨을 죽이는 사냥꾼처럼.

“칠살(七殺), 즉 외부의 거친 공격은 튕겨내려 하면 오히려 내가 다칩니다. 저들이 던진 수천 장의 억지 논리를 그냥 온몸으로 다 받아들이십시오. 시련을 받아들이는 자는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강 변호사가 몸을 일으켜 이지윤 사원(옥춘청수)의 자리로 다가갔다.

“이 사원님. 저들이 낸 증거 자료 4,500페이지. 그걸 방어할 방법을 찾지 말고, 저 자료들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그 기원만 깊게 파고들어 주십시오.”

이지윤 사원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리 위로, 깊고 고요한 우물 같은 푸른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아주 미세한 틈만 있어도 스며들어 만물을 적시고 기어코 가장 깊은 바닥의 본질을 꿰뚫어 내는 힘.

‘윤하지성(潤下之性)’. 적시며 아래로 흐르는 수(水)의 본질이 이지윤 사원의 직관을 통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타닥, 탁.

고요한 사무실에 그녀의 마우스 클릭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이지윤 사원의 잔잔하던 눈동자에 예리한 파문이 일었다.

“찾았습니다.”

그녀의 한 마디에 팀원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황 전무가 끌어들인 연합사 중 핵심인 ‘A전자’와 ‘B모바일’. 이 두 회사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합심해서 제출한 ‘통합 통신 프로토콜 특허’ 자료 말입니다.”

이지윤 사원이 화면에 두 개의 복잡한 코드 뭉치를 띄웠다.

“겉보기엔 완벽한 공동 특허 같지만… 가장 깊은 코어 단의 암호화 해시값을 뜯어보니 이상한 게 보입니다. B모바일이 작년에 독자 개발했다가 실패했던 프로젝트의 잔재가, A전자의 메인 코드 베이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물었다.

강한결 변호사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A전자가 B모바일의 핵심 기술을 뒤에서 몰래 도둑질해서 자기들 특허로 둔갑시켰다는 뜻이죠. 황 전무는 우리를 치기 위해 이 두 회사를 억지로 한 배에 태웠지만, 정작 이 배 안에는 서로의 등에 칼을 꽂은 도둑놈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던 겁니다.”

적의 공격(칠살)을 피하지 않고 깊이 들여다보아, 오히려 그 안에서 적을 파멸시킬 지혜(인성)를 건져 올린 완벽한 살인상생(殺印相生)의 순간이었다.

나는 내 안의 옥춘반석 기운을 끌어올렸다. 황 전무가 던진 ‘가처분 소송’이라는 절망. 나는 이것을 흙에 파묻고, 놈들의 연합을 붕괴시킬 거대한 폭탄으로 빚어낼 것이다.

“최 대리.”

“네, 팀장님!”

“이 사원이 찾은 이 도둑질의 증거, 해시값 분석 리포트. 지금 당장 B모바일의 법무팀장과 최대 주주들 개인 이메일로 다이렉트로 쏴버려. 발신자는 ‘익명의 A전자 내부 고발자’로 세탁하고.”

최 대리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크으, 이간질의 미학! 3분이면 떡을 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 가처분 신청 첫 심문 기일.

법정 안에는 황 전무를 필두로 K-테크 혁신 연합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었다. 황 전무는 방청석에 앉은 나를 보며 조롱 섞인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끝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측 대리인석에는 강한결 변호사 단 한 명만이 낡은 야상을 벗고 빳빳한 법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채권자(혁신 연합) 측, 신청 취지 진술하십시오.” 판사가 말했다.

A전자를 대리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일어나 화려한 언변으로 우리의 특허 침해를 주장하려던 찰나였다.

쾅!

법정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B모바일의 법무 이사와 임원진들이 씩씩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어젯밤 최 대리가 뿌려둔 ‘A전자의 기술 탈취 증거 리포트’가 쥐여져 있었다.

“재판장님! 본 가처분 신청의 채권자 중 한 명인 B모바일은, 방금부로 채권자 지위를 포기함과 동시에 공동 신청인인 A전자를 ‘영업비밀 보호법 위반 및 기술 탈취’ 혐의로 형사 고소할 것을 선언합니다!”

법정이 발칵 뒤집혔다.

“김 이사! 지금 여기서 무슨 미친 짓이야!” 황 전무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힌 B모바일 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황 전무 당신도 똑같아! 우리 기술 훔쳐 간 A전자 놈들이랑 결탁해서 우리를 들러리로 세워? 우리가 저 피고(미래기획팀) 놈들 잡기 전에, 당신들부터 법의 심판대에 세워줄 테니까 각오해!”

법정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원고들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지르는 초유의 사태. 연합은 휴지 조각처럼 찢겨나갔다.

강한결 변호사는 묵묵히 서서 그 아수라장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시위를 당긴 채 머물렀고, 화살은 적들이 스스로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나는 방청석에서 천천히 일어나, 넋이 나간 채 굳어있는 황 전무의 어깨를 툭 쳤다.

“전무님. 억지로 끌어모은 껍데기 연합으로는, 진짜 본질을 빚어내는 우리를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그의 등 뒤에서 기괴하게 일렁이던 시커먼 무명의 그림자가,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연합군들의 탐욕에 휩쓸려 갈가리 찢겨나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재판장을 빠져나오는 황 전무의 그림자 속에서 찢겨나간 무명의 파편 하나가 기어코 내 구두 발등 위로 툭, 떨어져 내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치명적인 내부의 약점을 파고들 준비를 마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