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16 화

시련의 화살을 잡아채는 법, 옥춘무사의 합류

황 전무가 회사를 떠나고 일주일.

사장 직속으로 격상된 미래기획팀은, ‘프로젝트 NOD’의 하반기 런칭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오 과장과 권 책임의 키보드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윤 과장은 매일 밤 공장에서 시제품 프레스를 찍어내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폭풍 전야의 고요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포털 메인 기사 좀 보십시오!”

최 대리(옥춘화광)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태블릿을 들고 뛰어왔다.

화면에 뜬 기사 제목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눈을 찔렀다.

[ 가짜 혁신은 가라! — K-테크 혁신 연합, A사(우리 회사)의 신형 디바이스에 대해 전면적인 특허 침해 및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 제기 ]

기사 스크롤을 내리자, 익숙하고 역겨운 얼굴이 보였다.

‘K-테크 혁신 연합’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 고문 자격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남자. 황 전무였다.

그는 우리 팀이 개발한 ‘Agentic UX’의 핵심인 API 우회 기술과 백도어 통신망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이자 타사의 특허를 도용한 불법 해킹 기기’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독자적으로 짠 코드를 특허 침해라고 엮어?”

권 책임(옥춘검객)이 책상을 내리쳤다.

“기술로는 못 이기니까, 아예 법이라는 목줄을 채워서 런칭 자체를 못 하게 무기한 묶어버리려는 속셈입니다.”

정 대리(옥춘선비)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이를 갈았다.

황 전무의 등 뒤에서 보았던 그 끔찍한 진흙, 무명(無名).

놈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밖으로 나가 자신과 똑같이 기득권에 눈이 먼 경쟁사들을 집어삼켜 거대한 연합군을 만들고, 우리를 향해 거대한 ‘시련’의 화살을 쏘아 올린 것이다.

“법무팀 쪽에 연락해 봤어?”

“방금 통화했는데… 저쪽에서 대형 로펌 세 곳을 동시에 끼고 들어와서, 방어하는 데만 최소 1년은 걸린답니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우리 프로젝트는 그 즉시 올스톱입니다.”

사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검객)과 완벽한 시스템(암석)을 갖춰도, 법원이 판매 금지 명령을 내려버리면 이 기기는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다. 황 전무가 노린 건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미래기획팀 사무실의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낯선 구두 발소리가 울렸다.

깔끔한 정장이 아니라, 활동하기 편한 낡은 야상 점퍼를 걸친 사내. 한쪽 어깨에는 서류 가방 대신 길쭉하고 무거운 장비 가방 같은 것을 둘러멘 채였다.

그는 덥수룩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사무실 안을 쓱 훑어보았다.

“법무팀에서 파견 나왔습니다. 서도진 팀장님이 어느 분이시죠?”

그의 목소리는 법조인 특유의 매끄러운 톤이 아니었다. 거친 야생의 모래바람을 맞고 자란 듯 묵직하고 단단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주했다.

그 순간, 찌릿하는 감각과 함께 내 시야가 다시 한번 일그러지며 신화의 장막이 걷혔다.

그의 정수리 위. 짙은 안개가 낀 험준한 산정(山頂)의 환영이 펼쳐지더니, 그 안에서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거대한 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시커먼 독화살(칠살)들이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활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폭풍의 한가운데서 묵묵히 먼 지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뇌리를 관통하는 서늘한 깨달음.

‘살인상생(殺印相生).’

가장 거친 도전과 시련의 별인 칠살(七殺)을, 지혜의 별인 인성(印星)이 온몸으로 받아내어 승화시키는 자. 그는 평탄한 인생을 사는 엘리트가 아니라, 부서질 만큼 강한 시련 속에서 단련되어 그 위기를 자기 자산으로 만들어버리는 ‘옥춘무사(玉春武士)‘의 기운을 타고난 자였다.

“서도진입니다. 법무팀에서 직접 파견을 다 오시고,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보죠?”

“최악이죠.”

남자가 픽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명찰에 ‘강한결 변호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쪽은 대한민국 1, 2, 3위 로펌을 다 끌어모았습니다. 우리 법무팀장님은 꼬리 자르기를 위해 프로젝트부터 엎자고 난리가 났고요. 다들 무서워서 황 전무의 칼끝을 피하려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 변호사님은, 피하지 않고 이 사지로 걸어 들어오셨군요.”

내 말에 강한결 변호사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받아들이는 자는 죽일 수 없으니까요.”

그가 내뱉은 한 마디가 묵직하게 회의실을 울렸다. “시련은 극복하려 발버둥 치거나 피하려 할 때 베이는 법입니다. 옥죄어오는 그 긴장감을 피하지 않고 시위를 당긴 채 그 자리에 머무는 자가 결국 이깁니다. 저는 저들이 쏘아 올린 그 거친 화살들을 다 받아내서, 역으로 놈들의 심장에 꽂아주러 왔습니다.”

내 가슴 속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이 짜릿하게 공명했다. 끝을 흙에 묻어 시작으로 변환하는 나의 힘이, 외부의 충격을 지혜로 전환하는 무사의 방패를 만났다. 황 전무가 던진 ‘소송’이라는 절망은, 오히려 놈들을 법적으로 완벽하게 파멸시킬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저쪽은 우리가 기술을 훔쳤다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법정 공방으로 끌고 가면 무조건 우리가 불리합니다.” 내가 상황을 짚었다.

강 변호사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가 펜을 들었다.

“그래서, 우린 방어하지 않습니다.”

그가 화이트보드에 ‘K-테크 혁신 연합’이라고 적힌 글자 위에 크게 ‘X’표를 쳤다.

“저들은 급조된 연합체입니다. 각기 다른 회사의 이해관계가 엉성하게 얽혀있죠. 놈들이 우리에게 소송을 걸기 위해 제출한 수천 장의 증거 자료들… 그 안에는 오히려 지들끼리 서로의 특허를 침해하고 훔쳐 쓴 더러운 이면 계약들이 산더미처럼 묻혀있을 겁니다.”

강 변호사가 입꼬리를 올려 잔혹하게 웃었다.

“우리 팀의 그 무시무시한 정보망(옥춘화광)과 분석력(옥춘청수)으로, 저들이 법원에 낸 자료를 역추적해서 놈들의 치부를 전부 파헤쳐 주십시오. 황 전무가 던진 화살을, 연합군 내부의 자폭 스위치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거친 무력이 아니라 시련에서 배운 지혜로 판을 이끄는 리더. 15별의 10번째 조각, 옥춘무사가 마침내 우리의 최전방 방어선에 섰다.

“최 대리. 이지윤 사원.”

나의 부름에 네트워크의 불꽃과 지혜의 샘물이 동시에 노트북을 열었다.

“황 전무. 네가 던진 그 무거운 절망의 돌덩이, 우리가 기꺼이 다 받아주지. 그리고 어떻게 산산조각 내서 네 머리 위로 돌려주는지 똑똑히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