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사내 암투와 튜토리얼
제 15 화
별들의 강을 깨우는 자, 튜토리얼을 끝내다
“서 팀장, 고생했네. 하지만 잊지 말게. 성공의 정점은 가장 위태로운 절벽이기도 하다는 걸.”
사장실을 나오며 마주친 황 전무는 자신의 짐이 담긴 박스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다.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사람의 것이 아닌 텅 빈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서 팀장. 별빛이 너무 밝으면 눈이 멀게 되는 법이지. 네가 살려낸 그 알량한 빛들이, 과연 진짜 어둠 앞에서도 버틸 수 있을까?”
그가 떠난 복도 바닥에는 끈적하고 시커먼 진흙 자국이 점칠 되어 있었다.
그것은 황 전무 개인의 패배를 넘어선, 더 거대하고 끔찍한 악의 선전포고였다.
나는 그 시커먼 잔재를 내려다보며, 성수동 사주집에서 옥춘할매가 들려주었던 천 년 전의 신화를 떠올렸다.
‘하늘에는 본래 사람의 운명을 빚어내는 15개의 찬란한 별자리가 있단다. 하지만 천 년 전, 그 별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타버린 찌꺼기들이 있었지. 끝없는 탐욕과 시기심 때문에 스스로 붕괴해 버린 자들의 짙은 한(恨)… 그것이 뭉쳐 만들어진 괴물이 바로 무명(無名)이다.’
무명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기에 타인의 빛을 훔쳐야만 연명할 수 있다.
황 전무라는 껍데기를 버린 저 거대한 무명은, 이제 회사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의 더 끔찍한 절망들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릴 것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전쟁인가.’
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미래기획팀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밖에서 느꼈던 서늘한 불안감이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갔다. 사장 직속 독립 부서로 격상되었다는 소식에, 팀원들의 기운은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 깊숙이 기대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옥춘반석(玉春盤石)‘의 기운이 묵직하게 소용돌이쳤다. 벼랑 끝의 빈 들녘에서 타버린 재와 절망을 받아내어, 맹렬히 썩히고 빚어내 새로운 시작을 거두는 변환자. 내가 기꺼이 무릎을 꿇고 흙에 묻었던 팀원들의 그 무거운 눈물과 포기들이, 어떻게 빚어졌는지 똑똑히 보일 차례였다.
내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사무실 안의 풍경이 경이로운 신화의 한 장면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재능의 집합이 아니었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지상에 다시 강림한 고귀한 별들의 군무(群舞)였다.
가장 먼저 선봉에 선 것은 ‘옥춘장수(玉春將帥)’, 김 대리였다. 비겁(比劫)이 다수로 왕성하여 강한 의지로 길을 여는 자. 그의 붉은 깃발은 척박한 전장 한가운데서 누구의 도움 없이도 거침없이 앞을 향해 펄럭이고 있었다.
그의 뒤를 맑고 서늘하게 받치는 것은 ‘옥춘청수(玉春淸水)’, 이지윤 사원이었다. 적시며 아래로 흐르는 윤하(潤下)의 본성. 그녀의 깊은 직관과 지혜의 샘물은 화려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프로젝트의 본질을 꿰뚫으며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조율하는 자, ‘옥춘청림(玉春靑林)’ 박 차장. 막힌 흐름 한가운데서 갈대처럼 가장 먼저 허리를 굽혀 흙의 떨림을 듣고, 정확한 때에 가장 먼저 일어서서 무리를 이끄는 조율자.
빛의 한가운데서는 ‘옥춘화광(玉春火光)’ 최 대리가 태양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며 빛을 나누어 세상을 밝히고 있었고, 그 옆에선 ‘옥춘객주(玉春客主)’ 윤 과장이 욕심을 버리고 오직 단 하나의 핵심에만 집중하며 거대한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무딘 쇠를 단련해 서늘한 명검을 뽑아든 정제의 화신, ‘옥춘검객(玉春劍客)’ 권 책임. 그리고 그 모든 검과 불꽃이 선을 넘지 않도록, 엄격한 규율 안에서 책과 붓으로 완벽한 지혜를 세우는 학문의 리더, ‘옥춘선비(玉春先輩)’ 정 대리까지.
사무실을 넘어 32층 사장실 쪽에서는, 부와 명예를 거침없이 흘려보내며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옥춘대감(玉春大監)‘의 웅장한 황금빛 장막이 우리를 든든하게 덮고 있었다.
나(반석)를 포함해 하늘의 15별 중 벌써 9개의 별이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내 시선은 이 찬란한 빛 너머의 빈자리들을 향하고 있었다.
할매가 말했던 15별의 완성. 우리에겐 아직, 14별을 밑에서부터 모조리 잇고 정상으로 받쳐주는 절대적인 신경망이자 흔들리지 않는 우주목, ‘옥춘거목(玉春巨木)‘의 뿌리가 없었다. 모든 별의 기운을 잇고 오랜 시간을 버텨내는 그 거대한 뿌리가 있어야만, 다가올 외부 ‘무명’의 총공세를 견뎌낼 수 있을 터였다.
어디 그뿐인가. 거친 칠살(七殺)의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지혜로 승화시키는 ‘옥춘무사(玉春武士)‘의 활시위도 필요했고, 천 권의 가르침을 깨닫고도 기꺼이 그 틀을 깨부수어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오를 자유인, ‘옥춘풍운(玉春風雲)‘의 거침없는 날갯짓도 우리에겐 절실했다.
이 찬란한 별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룰 때.
비로소 세상의 틈을 파고든 무명의 찌꺼기들을 완벽하게 태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가장 안쪽에 쑤셔 박아두었던 낡은 사직서를 꺼냈다. 한때는 무능한 상사와 썩어빠진 시스템을 피해 도망치려 썼던 종이 쪼가리. 하지만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 타버린 재를 심어 새로운 우주를 빚어내는 것이 내게 부여된 ‘가색지성’의 사명이니까.
찌익-!
나는 망설임 없이 사직서를 세로로 쫙 찢어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자, 다들 하던 일 멈추고 주목.”
나의 묵직한 부름에, 각자의 빛을 뿜어내던 팀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이 시간부로, 우리 미래기획팀은 세상에 없던 ‘별들의 강’을 흐르게 한다.”
나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껍데기뿐인 가짜들이 어떻게 발악하든, 권력을 쥔 그림자들이 어떻게 우리를 짓누르든 신경 쓰지 마라. 우리는 저들이 버린 절망 끝에서 완벽한 신세계를 빚어낼 거니까. 프로젝트 NOD(New Opportunity Discovery). 런칭까지 단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다들 준비됐나?”
“네, 팀장님!”
“부숴버리겠습니다!”
나의 외침에 각양각색의 찬란한 별빛들이 일제히 폭발적으로 공명하며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그들의 빛과 섞여 거대한 태풍의 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폐급 부서를 튜닝하는 튜토리얼은 완전히 끝났다.
세상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15별 어벤져스의 거침없는 행진이, 마침내 그 서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