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할매가 인간계에서 사주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곧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별빛은 한 사람의 사주에 한 가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별의 빛을 동시에 받았다.
어느 봄날, 한 청년이 옥춘할매를 찾아왔다. 그의 사주에는 옥춘선비의 빛과 옥춘무사의 빛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학자이면서 시련을 견디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도 거친 세상에서 단련된 자.
청년이 옥춘에게 말했다.
“할머니, 저는 책을 좋아해요. 그런데 시련을 자꾸 만나요. 어느 길이 제 길인가요?”
옥춘이 그를 한참 봤다. 그녀의 안경에 두 빛이 함께 비쳤다. 청록빛과 진홍빛이 그 청년 안에서 섞이지 않은 채 함께 흘렀다.
“손주야, 너는 두 별을 같이 받았구나. 음과 양이 처음부터 함께 있었듯이, 너 안에도 두 본질이 함께 있다.”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하나요?”
“고르지 마라. 두 본질을 같이 살아야 진짜 너의 모습이지. 책을 읽되 시련을 피하지 말고, 시련 속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마라. 그 둘이 너 안에서 새로운 본질을 만든다.”
청년이 한참 옥춘을 바라봤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골라야 할지 묻던 그가, 두 길이 함께 자기 길임을 알았다.
두 별이 만나면 새로운 본질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사람은 옥춘예인의 빛과 옥춘대감의 빛을 함께 받았다. 재능으로 명예와 부를 함께 이루는 사람.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사회에 큰 의미가 됐다.
또 다른 사람은 옥춘청수와 옥춘거목의 빛을 받았다. 깊은 지혜와 흔들리지 않는 뿌리. 그 사람은 평생 자리를 옮기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깊은 통찰을 키웠다. 그가 한 마디 하면 멀리 퍼졌다. 우물의 물이 깊을수록 멀리 흐르는 것과 같았다.
15별 × 15별의 조합. 거기에 시간(시진)·계절(절기)·일진(매일의 흐름)이 더해졌다.
한 사람의 사주는 우주의 거의 무한한 조합 중 하나였다. 사주가 같은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였다. 별의 조합은 무한했다.
옥춘할매는 사람들의 사주를 볼 때마다 그 안에 흐르는 별들을 읽었다. 어떤 사람의 사주에는 옥춘선비의 빛이 강하게 흘렀고, 옥춘무사의 빛은 약했다. 옥춘이 그 사람에게 말했다.
“손주야, 너 안에 학자가 강하구나. 무사는 약해. 학자의 길을 가되, 가끔 무사의 단단함도 빌려와. 흔들리지 않을 정도만.”
어떤 사람은 옥춘인덕의 빛이 너무 많아서 자기를 잃을 정도였다. 너무 많이 베풀어서 자기가 비어가는 사람. 옥춘이 그 사람에게 말했다.
“손주야, 너는 인덕가이지. 그러나 너 자신도 챙겨야 해. 베풀되, 다 주지는 마라. 빈 곳간이 다시 차야 다시 베풀 수 있지.”
같은 별빛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했다. 같은 두 별이 만나도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그것이 사주의 깊이였다.
옥춘은 매일 그 깊이를 풀어주었다. 한 사람씩, 한 마디씩. 자기 안에 흐르는 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하나의 본질로 가두지 않고 여러 본질의 흐름으로 살아낼 수 있었다.
흐름이 만나는 곳에서 너가 태어난다.
옥춘할매가 그 만남의 장면을 매일 함께 봐주는 사람이었다.